“더 빠르고 더 강하게” K팝이 선포한 ‘테크노 2.0’ 시대
2026.05.04 | by 신영 l young.s@billboard.co.kr2026년 5월의 K팝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더 빠르고, 더 강하게’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최근 컴백했거나 컴백을 앞둔 아티스트들이 잇따라 빠른 BPM과 강력한 킥, 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운 하드 테크노(Hard Techno)와 드럼앤베이스(Drum and Bass)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이미 전조를 드러낸 바 있다. 블랙핑크가 지난해 하드 테크노 기반의 “JUMP”로 강한 반응을 이끌어낸 이후, 아이브, 키키를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테크노 계열 사운드를 접목한 곡을 선보이며 장르 확장을 시도해왔다. 최근에는 드럼앤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운 신곡들도 이어지며, K팝 전반에 전자음악 기반 사운드가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HYBE는 가장 적극적으로 이 흐름을 끌어안고 있는 기획사로 평가된다. 산하 레이블 소속 걸그룹인 캣츠아이, 르세라핌, 아일릿이 비슷한 시기 전자음악 기반 신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출격했다.
먼저 캣츠아이는 신곡 “PINKY UP”을 통해 하이퍼팝 기반 사운드를 한층 확장했다. 강렬한 퍼커션과 베이스, 입체적인 신스 사운드가 결합된 이 곡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며 자신감 있게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포먼스 중심의 구성 역시 돋보인다. 해당 곡은 미국 대형 페스티벌인 코첼라(Coachella) 무대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후 Billboard Hot 100에 진입하며 글로벌 반응을 입증했다.
르세라핌 역시 전자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규 2집 선공개곡 “CELEBRATION”은 멜로딕 테크노와 하드스타일을 결합한 트랙으로, 경쾌하면서도 강한 비트가 특징이다. 공연장에서의 에너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구성과 함께, 실제 무대에서는 헤드뱅잉 퍼포먼스를 통해 장르 특유의 강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
아일릿은 테크노 장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미니 4집 타이틀곡 “It’s Me”는 반복적인 훅과 속도감 있는 전개를 중심으로, 기존의 키치하고 몽환적인 이미지에 강한 리듬감을 더했다. 데뷔 이후 쌓아온 감성 위에 전혀 다른 결의 에너지를 덧입히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한 셈이다.
이처럼 주요 그룹들이 전자음악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음악 시장의 변화가 자리한다. 2020년대 들어 유럽, 특히 독일 클럽 신을 중심으로 하드 테크노가 다시 부상했고, 이는 미국과 남미까지 확산되며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테크노 2.0’이라 불릴 정도로 재조명된 이 장르는 Sara Landry, Klangkuenstler 등 스타 DJ를 중심으로 대중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장해왔다.
하드 테크노와 드럼앤베이스가 갖는 핵심 매력은 ‘에너지’다. 170~180 BPM에 달하는 빠른 속도와 왜곡된 킥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강한 타격감은 청각적 자극을 넘어 신체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러한 사운드는 클럽과 페스티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특히 이러한 사운드는 숏폼 콘텐츠 플랫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영상 플랫폼에서는 짧은 구간 안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구조가 중요해졌고, 반복되는 챈트(Chant)와 직관적인 안무, 그리고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안티 드롭(Anti-drop)’ 구조는 15초 내외의 영상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최적화된 도구다.
결국 K팝이 이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에 가깝다. 글로벌 트렌드와의 정합성, 퍼포먼스 중심 산업 구조,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 환경까지 맞물리며 전자음악은 가장 효율적인 장르로 기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여름 시즌으로 접어들며 글로벌 EDM 페스티벌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하드 테크노와 드럼앤베이스 중심의 사운드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다만 관건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동일한 장르 안에서도 각 아티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색을 구축해 나갈지에 따라,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새로운 음악적 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K-팝의 지속 가능성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과감한 실험과, 그 속에서 아티스트 고유의 정체성을 얼마나 선명하게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