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연준에게는 레퍼런스가 필요없다
2025.11.18 | by Lee Maroo레퍼런스 투성이 K-팝 씬에서 연준은 첫 번째 솔로 앨범으로 기어코 증명해냈다. 정말로 ‘라벨(LABEL)’ 붙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11월 7일 발매된 연준(YEONJUN)의 첫 솔로 앨범 NO LABELS: PART 01 (노 레이블스: 파트 01) 은 2025년, 가장 흥미로운 K-팝 앨범이 될 전망이다. 앞서 작년 9월 29일 공개된 연준의 첫 믹스테입 GGUM은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운 선택처럼 느껴졌다. 일렉트로 사운드가 섞인 힙합, 기계음 속에 또렷하지 않은 보컬과 반복되는 훅은 이미 잘 알려진 춤 실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아온 연준의 강점들 ━ 보컬적인 기량이나 곡에 맞게 다채롭게 변주되는 목소리, 라이브에서 빛을 발하는 성량━을 드러내기에 퍼포먼스와 콘셉트에 치중한 것처럼 보였던 탓이다. 시도 그 자체에 의의를 두기에 연준은 당시 이미 데뷔 6년 차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라는 대형 그룹의 멤버이니까. 그러나 여러 평가가 엇갈린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무대를 사랑하고, 그해 연말 연시 대형 시상식 무대를 오로지 홀로 채우며 나아가는 연준의 모습을 보며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이 곡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응원하게 된 것이다. 이어진 투어에서 “GGUM” 무대에 갖가지 방식으로 등장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서, 멤버들 또한 이 퍼포먼스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7월 발매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4집 별의 장: TOGETHER에서 연준의 선택은 레게 록 장르의 “Ghost Girl”이었다. 다음 음악적 행보는 어디일까? 궁금해하던 차, 바로 NO LABELS: PART 01이 등장한 것이다

상의를 벗은 채 춤을 추는 연준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해 공개와 동시에 화제가 된 앨범 커버 사진은 사진가 강혜원(@hyeawonkang)의 작업이다. 이전에도 매거진 커버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단체 화보로 만난 인연이 있었지만, 사흘 동안의 촬영을 온전히 함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혜원의 눈에 비친 연준은 단연 자기 확신이 선명한 아티스트였다.
“연준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퍼포먼스와 음악에서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는 아티스트였어요” 강혜원은 빌보드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한다. “‘NO LABELS’라는 앨범 타이틀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고, 저는 어떠한 장치보다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그런 저에게 이번 제안이 왔다는 사실이 감사했죠.”. 음악에 대한 이해도 중요했다. “첫째 날 촬영 전부터 곡을 들으며 연준이 전달하려는 무드를 충분히 느끼려고 했어요. 곡을 계속 들었어요. 그것도 꽤 많이.” 최초 공개된 이미지와 앨범 커버 속에서 연준은 정지되지 않은 인물, 즉 움직임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약간의 뒤틀림, 그림자, 비정형적인 포즈는 안전한 ‘A컷’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선택된 B컷’의 미학에 가깝다. “상의 탈의 촬영은 둘째 날 진행됐어요. 처음엔 약간 낯설어하던 연준도 금세 리듬을 찾더라고요. 후반작업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매끄럽게 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아티스트 본연의 표정과 움직임을 그대로 살리자는 데 모두가 공감했어요.” 최종적으로 해당 사진이 커버로 선택된 데엔 디자인적 고려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연준 자신이 가진 존재감과 선택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침대와 의자를 활용한 첫째 날의 컷들은 ‘SET-UP B’ 버전 앨범 이미지에 다양하게 사용됐다. 무브먼트에만 집중할 경우 연준의 아이코닉한 얼굴과 에너지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강혜원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 결과, 퍼포머로서의 움직임과 인물로서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이미지들이 탄생했다.
셋째 날 촬영은 태국에서 진행된 뮤직비디오 일정과 병행됐다. “움직임이 있는 촬영과 영상 촬영은 오히려 빨리 끝났어요. 연준이 이미 자신의 퍼포먼스에 완전히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강혜원이 전하는 연준은,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확신과 준비로 이미 장면을 완성하고 들어오는 아티스트였다.

‘아무 표식 없는 그 자체의 나(NO LABELS, JUST ME)’, 누구나 레토릭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이 표현을, 첫 솔로 앨범에서 연준은 음악과 비주얼로 완벽하게 증명한다. 총 6개 트랙으로 이뤄진 앨범은 마지막 트랙 “Coma”를 제외하면 모두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인 MISHA(@thatboymishaa)의 전체 프로듀싱 하에 일관되게 이뤄졌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곡 “Upside Down Kiss”로 이미 한번 연준과 만난 적 있는 MISHA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이 프로젝트는 내게도 여러 면에서 처음이었으며, 엄청나게 큰 의미다. 내 곡들을 믿어주고 이 프로젝트에 관해 내가 온전히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나 자신일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하다(This project is a lot of firsts for me and means the world. Thank you for believing in these songs and allowing me to be completely myself as a writer and producer throughout this project.)” 라고 밝혔다.

선명한 드럼 비트와 연준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시작하는 첫 번째 트랙 “Talk to You”는 후렴구의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에도 밀리지 않는 연준의 랩과 리드미컬하게 완급조절되는 보컬이 매력적인 곡이다. 타이틀곡의 록킹한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다음 트랙 “Forever”의 힘을 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신디사이저, 간결한 리듬으로 이어진다. 캣츠아이(KATSEYE)의 다니엘라가 참여한 3번째 트랙 “Let Me Tell You (feat. Daniela of KATSEYE)”의 신스 사운드는 "Forever"를 이어 받으며, 앨범 전체에 섹시한 무드와 온기를 더한다. 연준의 여유로운 보이스 위로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 그리고 후반부 키보드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올드스쿨 힙합 넘버 “Do It”의 에너지는 하드코어 힙합 장르인 5번째 트랙 “Nothin’ Bout Me”로 이어진다. '누가 날 정의해(Define)’, ‘뭐라건 no 알 바’ 같은 후렴구 가사와 ‘All that talkin’ Shut up’으로 폭발하는 스크래칭 샤우팅이 돋보이는 5번 “Nothin’ Bout Me”는 앨범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전하는 넘버이기도 하다. 고조된 에너지는 6번 “Coma”의 힙합 사운드에도 자연스레 포개진다. 테이프가 늘어지는 효과(Tape Stop Effect)를 적용한 덕에 강렬한 사운드 속에서도 차츰 에너지가 자연스레 소강하며, 앨범의 마지막을 향해 간다. “You’re in my zone, come and follow”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말이다.
이처럼 일관된 색과 기획 덕분일까? 연준의 이번 뮤직비디오는 “NO LABELS: PART 01” 이라는 타이틀 하에 “Coma” “Let Me Tell You (feat. Daniela of KATSEYE)” “Talk to You” 세 곡이 옴니버스처럼 이어지는 6분 짜리 영상으로 제작됐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맡은 송태종(@songtaejong) 감독은 “6분 짜리 옴니버스 영상을 만들면 좋겠다는 것은 빅히트 뮤직의 아이디어였다. 나는 오히려 긴 영상을 만들자는 의견에 걱정부터 앞섰다. 모든 영상이 짧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6분 짜리 영상이 길게 느껴지지 않게 중간중간 시선을 붙들 재미있는 부분, 뜻밖의 요소를 넣었다. 항상 무슨 촬영에서든 피사체의 매력을 끝까지 느끼려고 하는데, 특히 와이어 신은 현장에서 화면에 담긴 샷을 보며 내가 지금까지 찍어본 것 중에 지금 화면이 가장 멋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웃음)”라며 촬영을 회고했다.
K- 팝을 둘러싼 이야기는 항상 분분하다. 듣는 음악인지 보는 음악인지에서부터, 기존의 유산에서 어떤 요소를 가져다 썼으며 유려한 낱말과 과잉된 이미지들이 쌓아놓은 기대감 속에 과연 본질인 음악은 얼마나 부응하는지… 늘 따라다니는 의심과 평가, 그리고 끝없는 초조함과 불안 속에서도━ 연준은 “GGUM” 활동을 앞두고 혼자라는 두려움과 부담감에 울었음을 고백한 바 있으며, 앨범 작업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곡 작업과, 안무, 퍼포먼스, 촉박한 일정의 압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 연준은 기어코 자신의 것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연준의 이번 앨범에는 어떤 라벨도, 레퍼런스도 없다. 어쩌면 레퍼런스가 필요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이미 명백하게 알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