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PRESS PLAY’: ALL 6 TRACKS RANKED
2026.10.23 | by 김수경 | ksk@billboard.co.kr글로벌 디바로 우뚝 선 리사의 여유롭고 강렬한 귀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섯 트랙으로 이뤄진 영화가 귀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리사가 영화 한 편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열린 2026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에서 리사는 “Dream”으로 ‘베스트 팝’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사브리나 카펜터,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과 겨뤄 거둔 승리이자 케이팝 솔로 아티스트 최초의 이 부문 수상이다. 앞서 리사는 지난해 발표한 ‘얼터 에고’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최고 7위에 이름을 올렸고, 9월 선보인 선공개곡 “SaWaDiKa”로는 빌보드 핫 100에 69위로 진입했다.
이처럼 리사가 글로벌 아티스트로서의 영향력을 입증해 온 가운데, 새 EP ‘PRESS PLAY’가 베일을 벗는다. 앨범 제목은 수록곡 “Tarantino”의 한 줄 “It’s a movie baby, come and press play”에서 가져왔다. ‘PRESS PLAY’는 청각적 희열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시각적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앨범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방콕 거리를 누비는 툭툭, 서킷을 가르는 페라리, 자정 넘은 댄스플로어, 타란티노 영화 속 모텔 앞, 요가 수련 스튜디오까지 장면이 쉴 새 없이 바뀐다.
‘PRESS PLAY’는 리사가 모든 트랙의 작사·작곡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앨범이기도 하다. 리한나 “Umbrella”의 보컬 프로듀서로 이름난 쿡 해럴이 보컬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앨범 전반을 랩과 싱잉 랩이 이끌지만, 곡마다 질감이 달라 지루할 틈이 없다.
전 세계는 리사가 들고 온 이 영화를 기대해도 좋다. 빌보드 코리아가 ‘PRESS PLAY’ 수록곡 6곡의 순위를 매겼다.
6. “Cut U Off”
“Cut U Off”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휘파람 소리 중 하나로 시작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Vol. 1’(2003)에서 엘 드라이버가 간호사 복장으로 병원 복도를 걸으며, 브라이드를 암살하러 가는 길에 불던 바로 그 휘파람이다. 복수극 ‘킬 빌’의 휘파람과 칼날처럼 서늘한 리사의 랩 “Chop chop”, “Master of sashimi”의 만남은 곡 초반부터 가슴 뛰는 희열과 기대감을 선사한다.
리사는 ‘킬 빌’이 보여준 복수의 희열을 손절 뒤에 찾아오는 쾌감으로 재해석했다. 곡 내내 차갑고 당당하게 손절을 읊어낸다. 다만 강렬한 도입부를 지나면 편하게 흘려듣기 좋은 이지리스닝으로 흘러가며, 초반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수록곡으로서 제 몫은 충분히 해낸다.
(내가 쓴 버전: 리사는 시종일관 차가우면서도 당당하게 손절을 노래하고 랩한다. 다만 끝까지 강렬한 인상을 이어간다기보다는 편하게 흘려듣기 좋은 이지리스닝에 가깝다. 기대감으로 포문을 연 초반에 비해 평이하게 흘러가지만, 수록곡으로서 제 몫은 충분히 해낸다. )
5. “Sweat”
무중력의 우주 공간을 유영하며 리사의 랩에 맞춰 요가를 하는 듯한 환상적인 곡이다. 힘을 뺀 듯하면서도 쫄깃하게 내뱉는 리사의 “Stretch it out”, “Don’t stress me out”이 귓가에 닿을 때마다, 굳어 있던 몸이 한 마디씩 풀려간다. 몸을 늘리라는 구령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랩에 꾸준히 변주를 줘, 끝까지 듣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Now make me your muse”처럼 장난기 있으면서도 유혹적인 리사 특유의 모드가 잔잔히 흘러, 납작하지만은 않은 트랙이다.
“Yoga is my antidote”라고 노래하던 리사가 “Inhale, Exhale”을 건네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현실을 살고 있든 잠시 숨을 골라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은 트랙이다.
4. “Tarantino”
EP의 세계관을 가장 노골적으로 펼쳐 보이는 곡이다. “Got my nails really long like the barrel of my gun.” 길게 뻗은 네일을 총신에 빗댄 첫 소절부터 재치가 번뜩인다. 리사의 화려한 손끝이 순식간에 타란티노 영화 속 오브제로 바뀌는 순간이다.
칼을 휘두르는 듯한 효과음 위로 ‘킬 빌’, ‘데스 프루프’, 카타나, 그리고 “Hollywood in your hands”까지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피가 줄줄이 소환된다. “Mustard all on my sneakers”에서는 노란 트랙수트 차림의 ‘킬 빌’ 브라이드가, “Black suit”에서는 검은 수트를 맞춰 입은 갱스터들이 절로 떠오른다. 귀로 듣는데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시청각적 재미가 쏠쏠하다. “At the drive-thru Thai funk shaking out the trunk”처럼 태국의 흥을 슬쩍 끼워 넣는 것도 리사답다.
프로듀싱은 네덜란드 출신의 두 프로듀서가 맡았다. “SaWaDiKa”도 함께 만든 톰 브리지스는 옐로 클로의 빌보드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차트 1위작 ‘Blood for Mercy’에 참여하고, 데이비드 게타, 스티브 아오키 등과 작업해 온 댄스 뮤직 베테랑이다. 여기에 드레이크의 ‘Honestly, Nevermind’에서 “Falling Back” 등 다섯 곡을 공동 작곡·프로듀싱한 보 녹스가 힘을 보탰다. 클럽을 달궈온 프로듀서들이 그려낸 타란티노 월드라니,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부터 기대할 수밖에 없다. 앨범 제목이 탄생한 곡이지만, 귀에 꽂히는 힘만 놓고 보면 “V12”가 한 수 위다.
3. “V12”
“V12”는 반전으로 가득한 곡이다. 리사는 ‘Sa’라는 음절을 읊조리며, 성스러우면서도 특유의 장난기가 묻어나는 분위기로 트랙을 연다. ‘Sa’는 태국어로 ‘대담하다’, ‘톡 쏘다’라는 뜻이고, 이산 지방 방언으로는 ‘소문이 자자하다, 널리 알려지다’라는 의미도 품고 있다. 그 다층적인 의미를 음미하려는 찰나 리사는 ‘Sike(psych)’로 소리를 바꿔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는다.
‘Sa’와 ‘Sike’의 대비가 반복되는 사이 둔탁한 비트와 함께 “V12”를 알리는 낮은 목소리가 깔리며 기대감이 서서히 차오른다. 그렇게 등장한 리사는 여유롭고 강렬하다. 고성능 슈퍼카의 심장이라 불리는 V12 엔진과 리사의 경계는 느긋한 랩 속에서 점점 흐려진다. 12개의 실린더를 정밀하게 맞물리듯 디테일에 공을 들이되(“Devil in the details”) 완벽 따위는 좇지 않는 태도(“I don’t chase perfection”), 매장에서는 살 수 없는 희소성(“Couldn’t cop this at retail”), 풀 액셀로 끌어올리는 압도적인 출력. V12 엔진이 곧 리사 그 자체다. “You should be impressed”라는 한마디가 허세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프로듀서는 닥터 드레의 ‘Compton’에 참여했고 NCT 127 등과의 작업으로 K팝 팬들에게도 익숙한 뎀 조인츠다. “SaWaDiKa”에서 자랑하던 인디고빛 페라리의 조수석에 앉아, 리사의 운전에 몸을 맡긴 채 느긋하게 서킷을 도는 기분이 드는 곡이다.
2. “Cobra”
“Dance / floor / Tempo / Fast / Slow / Go.” 단어 하나씩 툭툭 끊어 던지는 훅은 더없이 단순한데, 그래서 더 재치 있다. 한 번 들으면 몸이 먼저 박자를 센다. 멜로디 라인도 전반적으로 매끄럽고, “Hold up / This place about to go up”으로 이어지는 프리코러스는 클럽의 온도를 단번에 끌어올린다. 앰뷸런스 사이렌처럼 울리는 사운드도 신선하다. 자정 10분 뒤, 매트 블랙 트럭을 몰고 파티장으로 질주하는 리사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우리가 도착해야 파티가 시작된다(the party don’t start till we roll up)”는 그의 말처럼. 조니 골드스타인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미시 엘리엇과 팀발랜드의 2003년 곡 ‘Bomb Intro/Pass That Dutch’를 인터폴레이션해 2000년대 초 힙합 클럽의 공기를 끌어왔다. “Tequila mixed with soda / Got me moving like a cobra.” 듣는 사람까지 코브라처럼 몸을 꼬게 만드는, 같이 춤추고 싶어지는 트랙이다.
1. “SaWaDiKa”
부동의 1위. 선공개곡으로 내세울 만한 자신감이 곡 전체에 흐른다. 당당한 랩과 보컬이 적절히 맞물리고, “Hello Sawadika”로 시작하는 훅은 전 세계를 홀리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La la Lisa la diva / Sawadika there she go.” 이보다 명쾌한 자기소개가 있을까.
태국이라는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낸 대목도 눈에 띈다. 두 번째 벌스에서 리사는 “Bang bang Bangkok bang”을 외치고, ‘정말 잘한다’는 뜻의 태국어 ‘껭막(geng mak)’을 크루와 함께 소리친다. 통장에 바트화가 쌓이고, 툭툭으로 도넛 드리프트를 그리는 장면까지 방콕 한복판이 그대로 펼쳐진다. 중간에 “How many got discipline / How many that been where I been”을 거듭 묻는 대목은 태국 부리람 출신 소녀가 글로벌 디바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떠올리게 한다.
톰 브리지스와 오지볼타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오지볼타는 칸예 웨스트 “Jail”로 그래미 ‘베스트 랩 송’을 거머쥐고, 더 위켄드와 저스틴 비버의 히트곡을 빚어낸 뉴욕 출신 프로듀싱 듀오다. 로제의 “On the Ground”, 리사의 전작 ‘얼터 에고’ 수록곡 “BADGRRRL”을 함께 만들며 블랙핑크와도 인연을 이어왔다. 리사의 강점을 이미 꿰뚫고 있는 오지볼타가 다시 합류해 완성한 이 거침없는 인사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이자 이 EP를 가장 잘 요약하는 곡이다.